제목: 급류
저자: 정대건
출판: 2022. 12. 22
급류 : 네이버 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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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너 소용돌이에 빠지면 어떻게 해야 하는 줄 알아?
수면에서 나오려 하지 말고 숨 참고 밑바닥까지 잠수해서 빠져나와야 돼.”
상처에 흠뻑 젖은 이들이 각자의 몸을 말리기까지,
서로의 흉터를 감싸며 다시 무지개를 보기까지
거센 물살 같은 시간 속에서 헤엄치는 법을 알아내는
연약한 이들의 용감한 성장담, 단 하나의 사랑론
2020년 《한경신춘문예》에 장편소설 『GV 빌런 고태경』이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한 소설가 정대건의 두 번째 장편소설 『급류』가 오늘의 젊은 작가 시리즈 40번으로 출간되었다. 『급류』는 저수지와 계곡이 유명한 지방도시 ‘진평’을 배경으로, 열일곱 살 동갑내기인 ‘도담’과 ‘해솔’의 만남과 사랑을 그린 소설이다. 아빠와 함께 수영을 하러 갔던 도담이 한눈에 인상적인 남자아이 ‘해솔’이 물에 빠질 뻔한 것을 구하러 뛰어들며 둘의 인연은 시작된다. 운명적이고 낭만적으로 보이는 첫 만남 이후 둘은 모든 걸 이야기하고 비밀 없는 사이가 되지만, 그 첫사랑이 잔잔한 물처럼 평탄하지만은 않다. 모르는 사이에 디뎌 빠져나올 수 없이 빨려드는 와류처럼 둘의 관계는 우연한 사건으로 다른 국면을 맞이한다. 도담과 해솔의 관계가 연인으로 발전하던 어느 날, 해솔의 엄마와 도담의 아빠가 불륜 관계인 듯한 정황이 드러나고 이에 화가 난 도담은 그 둘이 은밀히 만나기로 한 날 밤 랜턴을 들고 그들의 뒤를 밟는다. 그리고 그곳에서 생각지도 못한 사고가 벌어진다. 그날 이후, 진평에서 오직 서로가 전부이던, 나누지 못할 비밀이 없던 도담과 해솔의 관계와 삶은 순식간에 바뀌어 버린다. 해솔의 엄마와 도담의 아빠는 어떤 관계였던 걸까? 그 날, 그 밤 도담과 해솔은 어떤 일을 겪게 된 걸까?
▶ 소나기가 쏟아졌다. 갑작스러운 비에 우산 없는 남학생들이 저들끼리 욕설을 뱉고 웃으며 뛰어갔다. 그들이 어리게 느껴졌다. 그들과 비슷한 나이인 태준은 남들처럼 추억을 만들고 웃고 즐기는 연애를 바랄 뿐이었다. 상대방의 지옥을 짊어진다는 선택지는 없었다. 연애라는 건 상대방이라는 책을 읽는 거라고, 그렇게 두 배의 시간을 살 수 있는 거라고, 태준은 말한 적이 있었다. 도담은 자신이 펼치고 싶지 않은 책, 끝까지 읽고 싶지 않은 책처럼 느껴졌다. 전부 말뿐이었다. 그렇게 좋아하지도 않은 태준에게 자신이 그토록 상처를 받은 게 놀라웠다.
▶ 도담에게 사랑은 급류와 같은 위험한 이름이었다. 휩쓸려 버리는 것이고, 모든 것을 잃게 되는 것, 발가벗은 시체로 떠오르는 것, 다슬기가 온몸을 뒤덮는 것이다. 더는 사랑에 빠지고 싶지 않았다. 왜 사랑에 ‘빠진다’고 하는 걸까. 물에 빠지다. 늪에 빠지다. 함정에 빠지다. 절망에 빠지다. 빠진다는 건 빠져나와야 한다는 것처럼 느껴졌다.
▶ 해솔의 시계는 멈춰 버렸다. 기계처럼 수업에 출석하고 암기를 하고 시험을 보고 학점을 채우며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동안에도 세상은 흘러갔다. 젊음으로 가득한 캠퍼스에서 해솔은 매일 죽음에 대해 생각했고 이미 아주 늙어 버린 기분이었다. 강의하는 노교수보다도 더. 죽음을 망각하고 영원히 살것처럼 구는 게 젊은이들의 특권이라면 해솔은 젊음을 잃어 버렸다.
▶ 평소 예지는 사랑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이라고 말하는 사랑 예찬론자였다. 도담은 예지가 그렇게 사랑을 최고로 생각할 수 있는 건 아직 사랑에 충분히 당하지 않아서라고 믿었다. 도담은 불행의 크기를 다이아몬드라도 되는 양 자신의 것과 남의 것을 비교했다. 도담에게는 여전히 자신이 가진 불행이 가장 크고 가장 값졌다.
▶ 도담은 해솔을 빤히 바라봤다. 해솔의 복잡한 얼굴을 보면 예전에 해솔에게서 느껴졌던 아주 귀한 것을 잃어버린 것 같아 안타까웠다. 끔찍한 일이 있기 전의 그 때묻지 않은 미소는 다시 볼 수 없었다. 애초에 그 환희에 찬 얼굴을 몰랐으면 모르지만, 누구보다 잘 알았기에, 해솔을 볼 때마다 짠했다. 도담이 양손으로 해솔의 양 볼을 감쌌다. “불쌍한 해솔이.” 도담이 해솔을 끌어 안았다. 해솔의 숨결과 품이 뜨거웠다. 이대로 떨어지지 않고 아예 한 몸으로 붙어 버렸으면 싶었다. 도담의 어깨에 얼굴을 파묻은 해솔이 말했다. “나 안 불쌍해. 네가 있잖아.”
▶ 이 관계가 힘들다는 생각이 도담의 머리를 스쳤다. 다른 사람을 만나고 싶은 건 아니다. 그러나 죄책감을 지닌 듯한 저 얼굴을 평생 마주할 수 있을까. 계속 미안해하고 사과하고 눈치 보고 그렇게……. 그게 사랑일까. 해솔은 그런 생활이 행복할까. 분노는 그 분노의 정체를 알고 있는 사람 앞에서 더욱 쉽게 뿜어져 나온다. 상처도 아무도 모르는 상처보다 그 상처의 존재를 아는 사람 앞에서 더 아프다.
▶ 해솔과 얽힌 사연 때문에 연상되는 슬픔. 같은 상처를 가진 동질감. 연민이다. 우리가 보통 지독한 인연은 아니지. 해솔과의 재회에 운명 같은 단어가 연상되는 건 우연에도 인과를 만들고 싶어 하는 사람의 습성 때문이다. 추억 때문이다. 좋았던 날들에 대한 반가움과 지나가 버린 한때에 대한 슬픔일 수도. 이성에 대한 열정? 호르몬 작용은 진작 끝났다. 소식이 궁금하고 그리워하는 마음. 걱정하고 애타게 보고 싶은 마음. 꽉 끌어안고 안기고 싶은 마음. 그런 때도 분명히 있었다. 마음의 불씨는 전부 사그라져 버렸다. 완전한 전소. 남은 거라고는 그을린 시커먼 자국과 탄내 가득한 폐허.
▶ 해솔이 사명감 때문이라고 말하지만 도담은 알 수 있었다. 몸에 상처를 내고 술에 의존해 지냈던 도담은 자신을 벌하려는 마음에 대해선 누구보다 잘 알았다. 그 누구도 모르는 해솔의 비밀을 세상에서 유일하게 도담만은 알 수 있었다. 모두가 옳다고 하는, 생명을 위한 희생이라는 가치 안에서만 자기 파괴를 할 수 있다는 게 너무나 해솔이다웠다.
▶ 도담의 말을 듣고 해솔은 자기도 몰랐던 자신의 상태를 알게 된 듯 했다. 아무도 모르는 죄책감을 오래 품고 지낸 그는 자기 삶을 덤으로 얻은 인생이라고 여겼다. 열 명의 목숨을 구하고 백 명의 목숨을 구하면 그 값을 치를 수 있을까 하는 마음으로, 자기 눈을 찌르는 마음으로, 자신의 생명은 그렇게 쓰여야 한다는 듯 위태롭게 뛰어들었던 것이다.
▶ 도담은 마음이 향하는 곳이 확실한 사람의 표정을 하고 있었다. 승주는 그 단단한 얼굴에서 평소보다 눈부신 아름다움을 느꼈다. 자신과의 시간이 끝났음을 어쩔 수 없이 인정해야 했다. 승주는 후회의 눈물을 흘렸다.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 할 걸 그랬어. 함께한 시간이 얼마나 좋았는지 더 표현할 걸 그랬어. 승주는 자신이 이전에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사랑할 수가 없기에, 자신이 사랑을 줄 수 없다는 걸 알기에 사랑을 요구하지도 않았다. 달리 보면 승주는 계산이 정확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안전거리를 둔다고 이별이 쓰리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부정할 수 없는 것은 지금 자신에게 밀려드는 후회의 감정이었다. 승주는 자신의 계산이 틀렸음을 알았다. 문제는 거리가 아니었음을. 지금 승주는 그 누구도 사랑하지 못했다. 자기 자신조차도.
▶ 그때 생각했어. 누군가 죽기 전에 떠오르는 사람을 향해 느끼는 감정. 그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사랑이란 말을 발명한 것 같다고. 그 사람에게 한 단어로 할 수 있는 말을 위해 사랑한다는 말을 만든 것 같다고. 그때 깨달았어. 사랑한다는 말은 과거형은 힘이 없고 언제나 현재형이어야 한다는 걸.
▶ 둘은 물결을 가로질러 서로를 향해 헤엄치기 시작했다. 해솔과 도담은 손을 뻗어 서로의 손을 맞잡았다. 두 사람 앞에 파도가 일고 있었지만 그들은 수영하는 법을 알았다.
같은 날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두사람이 상처를 극복해 내는 과정은 달랐다.
한사람은 자신을 망가트림으로서, 한사람은 잊지 않음으로서.
자신의 상처조차 제대로 마주하지 못한채 더한 상처를 냈던 둘은 결국 돌고돌아 다시 서로를 선택하게 된다.
"두 사람 앞에 파도가 일고 있었지만 그들은 수영하는 법을 알았다."
이 책은 이 한마디면 충분한 것 같다.
살아가면서, 물에 빠지는 순간들은 수도 없이 많을 것이다. 다시는 물에 들어가지 않는 선택을 할 수도 있지만, 물에서 빠져나오는 방법을 배운다면 더 이상 물에 빠지는 것이 두렵지 않을 것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상처를 이해해 줄까? 하는 생각을 누구나 하게 된다. 역설적이게도 상처를 이해해줄 수 있는 사람은 같은 상처가 있는 사람이 아닐까 생각도 든다. 결국 경험하지 못하면 이해해지 못하기 때문에. 그렇다고 이해하지 못하는 그들을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각자 빠져나오지 못하는 물웅덩이 하나쯤은 다 가지고 있는 거니까.
때로는 사랑한다는 이유로 더 큰 상처를 주고 서로를 아프게 하기도 하지만, 그 아픔 너머 서로를 안아줄 수 있는 인연은 분명히 있다고 생각한다. 순전히 내탓으로만 일어난 일도, 상대방 탓으로만 일어나는 일도 없다. 어쩔 수 없는 일에 나를 너무 미워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타인을 사랑하기 위해선 가장 먼저 날 용서하고 사랑하는 것이 순서이다.
상처받은 마음속 아이가 수영하는 법을 배워 더 이상 물을 무서워 하지 않는 날이 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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