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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노트

'흔들리지 않는 행복' 어른의 행복은 조용하다 - 태수

by 글쓰는 리미 2024. 11.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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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어른의 행복은 조용하다.
작가: 태수
출판일: 2024. 11. 04

어른의 행복은 조용하다 : 네이버 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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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요약
 
우린 너무 쓸데없이 불행하고 너무 복잡하게 행복하다
조용한 인생에서도 행복을 발견하는 가장 현명한 방법

행복은 행복해야만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라면 믿겠는가? 많은 사람들은 행복이 나보다 잘난 사람들이 가진 것이라고 오해한다. 사람들이 몰리는 사진 명소에나 있다고 생각한다. 줄 서는 맛집에, 비싼 물건에, 남들이 보고 부러워할 만한 대단한 것들에 있다고 착각한다. 하지만 가장 쉽게 행복해지는 방법에는 ‘행복’이 없다. ‘불행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행복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어른의 행복은 조용하다》에서 저자 태수는 우리가 놓쳤던 바로 그 지점을 짚는다. 사람이란 의외로 행복 없이도 행복할 수 있다고. “희망은 없어도 절망도 없이 내일을 또 살아갈 수 있어서 행복할 수 있다”고. 이 원고를 먼저 읽은 독자들 역시 같은 부분에서 깨달음을 얻었다.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어가며 짜릿함보다는 편안함이 좋아지듯 우리가 삶에서 추구해야 하는 행복도 특별한 것보단 일상적인 것에 가깝다. 시시각각 감정이 소용돌이치고, 좋았다 나빴다를 반복하는 삶보단 별일 없이, 아픈 곳 없이 불행하지 않은 삶이 훨씬 확실하게 행복하다는 것을 몸소 체감한다.
이 책은 지난 2년 간 저자가 가장 쉽고 현명하게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느끼고 고민한 것들의 결정체다. 행복을 찾는 방법이 아니라 불행에 대한 수비력을 확실하게 길러줄 수 있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 그러니 쓸데없이 불행하고 복잡하게 행복한 삶에서 벗어나 더 확실하게 불행에서 벗어나 단순하게 행복해지고 싶다면 이 책을 펼쳐보자. 마음이 한결 편안해질 것이다.

〉〉 독자리뷰

“이상하게 보이겠지만 울고 싶어지는 날이면 태수 작가의 글을 찾는다.
더 슬퍼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충분히 울고 다시 나아가기 위해” _사전 독자 리뷰

“〈불편한 편의점〉 이후로 오랜만에 끝나지 않길 바라던 책” _사전 독자 리뷰
 
 
다정함은 체력에서 나온다. 달달한 사랑이나 찐한 우정도 결국 다 건강해야만 가능했다.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사람에겐 부모도 부부도, 결국은 남이다. 어쩌면 그래서 혼자가 좋다는 사람이 갈수록 많아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혼자만 될 수 있으면 이 모든 귀찮음과 짜증, 쓸모없는 대화에서 벗어나 자유를 만끽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니까. 그러나 알다시피 사람은 혼자 살 수 없다.
 
 
혼자가 좋다는 말은 사실 ‘잠시 숨 돌릴 시간 좀 줘’라는 말의 다른 표현이었을 뿐, 나는 영원히 혼자가 되고 싶진 않았다. 그저 내 사람들에게 보내야 할 다정함이란 의무에서 잠시 피신하고 싶었을 뿐이다. 비겁했다.
 
 
멋진 사회생활을 위해 너무 많은 내 생활을 포기하며 살지는 않길 바랄 뿐이다.
 
 
독일어에는 ‘치타델레(Zitadelle)’라는 말이 있다. 요새 안의 독립된 작은 보루라는 뜻으로 아무도 모르는 나만의 작은 방을 의미한다. 나는 섬세한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치타델레라고 생각한다. 챙겨야 할 것, 챙겨야 할 사람, 챙겨야 할 모든 감정들에서 벗어나 오직 나 자신만이 남겨진 시간과 공간이 이들에게는 필요하다. 돌볼 사람이 아무도 없는 그 고립된 공간 속에서만 남들에게 수도 없이 제공했던 말을 자신에게 돌려줄 것이기 때문이다.
 
 
포기가 습관이 되면 포기하지 않아도 되는 것까지 포기하게 된다. 자신이다.
 
 
축하라는 건 꼭 마라톤 결승라인과 같아서 축하받지 못한 레이스는 결코 끝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 누군가를 정말로 깊이 생각한다면 그의 고생에 진심으로 성대한 축하를 보내주자. 자만할지도 모른다는 걱정일랑 고이고이 접어 비행기로 날리고, 열심히 뛰어온 나와 내 사람들에게 자주 말해주자. “고생했다.” “나는 네가 정말 자랑스러워.”   폭죽이 커질수록 느는 것은 의외로 즐거움밖에 없을 테니까. 모두가 즐겁게 완주했던 그날의 운동회처럼.
 
 
행복은 돈으로 살 수 있다. 그것도 생각보다 싸게.   행복은 미루고 미룰 만큼 비싸지 않았다.
 
 
소년의 인생은 즐겁다. 청년의 인생은 힘겹고 아빠의 인생은 무겁다. 내 인생이 제일 힘겹다고 생각한 시절을 지나 누군가의 아빠가 되려 하는 지금, 우리 아빠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었는지 나는 새삼 다시 알게 되었다.
 
 
인생은 버티는 것만으로도 대단했다는 걸 너무 늦게 깨달았다.
 
 
인생의 의미를 잃어도, 누군가의 성공에 까무룩 자존감이 무너져도 꿋꿋이 일어나 제자리로 향하는 너를 응원해. 도망치지 않는 것도 능력이야. 빌어먹을 인생에 정직하게 부딪히는 너도, 충분히 대단한 사람이야. 삶에서 도망치지 않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건지 넌 모르지.
 
 
성공하는 삶 이전에 실패해도 괜찮은 삶을 살 것이다.
 
 
사람을 미워하는 데도 체력이 든다. 시간도 들고 감정도 들며 때때로 큰돈도 든다. 모두 이득 없이 낭비하기엔 너무도 소중한 가치들이다. 그 가치들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우린 서로를 좀 더 내버려둬야 한다. 사랑은 아니어도 “넌 그렇구나” 정도의 건조한 존중은 보내줘야 한다. 또 모른다. 혐오가 혐오를 부르듯 존중이 존중을 불러올지도. 우린 그렇게 많은 것을 미워할 능력 없이 태어났다.
 
 
자신의 노력을 좀 더 믿어보자. 열심히 해온 스스로에게 조금 더 큰 가능성을 쥐여주자.   우린 언제나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조금 더 높이 날 수 있는 사람이다.
 
 
우리 좀 더 자주 아프자. 그리고 빠르게 낫자.   아프지 않기보다는 빠르게 나을 줄 아는 사람이 되자.
 
 
희생은 아름답지만 지속되어서는 안 된다. 우린 참고 억누르는 것이 어른스러운 것이라 배워왔지만, 사실 아무도 자신의 자식마저 그런 인생을 살길 바라지는 않는다. 어른이란 자신을 가장 먼저 포기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자기 자신에게까지 선물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진짜 사이코패스는 감옥에 있지 않다. 그들은 학교와 회사와 가정과 동호회 안에 있다. 더 섬찟하고 더 똑똑한 모습으로. 그런 사람들에게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나는 도망치는 것밖에는 알지 못한다. 나약해서, 부족해서가 아니라 살기 위해 도망쳐야 할 때도 있으니까. 물론 누군가는 이런 것도 못 견디는 놈이 도대체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냐고 또 훈계를 놓겠지만, 유명 격투기 선수조차 말하지 않았나.   “칼 든 사람을 어떻게 이겨요. 도망쳐야지.”   프로 격투기 선수조차 칼 든 상대에게는 답이 없다. 그리고 세상에는 손보다 입으로 칼을 들고 사는 사람이 더 많다.
 
 
절망이 넘치는 시대, 우린 좀 더 운의 힘을 믿어야 한다. 최선의 선택을 하고 최선의 노력을 해도 원하지 않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당연한 진실을 받아들여 야 한다. 실패는 온전히 당신의 것이 아니다. 최선을 다한 자신에게, 소중한 사람들에게 “네 탓이 아니야”라는 말을 좀 더 넉넉하게 건넬 줄도 알아야 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을 핑곗거리가 아닌, 삶을 포기하지 않고 다시 시작할 용기를 얻기 위해.
 
 
그래서 웃음에는 연습이 필요하다. 웃음이 행복이, 모래 위 글씨처럼 인생이란 파도에 쓸려가기 전에 습관을 만들고 몸에 배게 해야 한다. 화밖에 남지 않은 얼굴로 마지막을 장식하고 싶지는 않다. 끝까지 삶에 웃어 보이고 싶다.
 
 
오늘도 내 인생에는 비가 많이 내릴 거야. 하지만 말야, 나는 그 속에서도 춤출 줄 아는 사람이지.
 
 
삶을 예쁘게 바라보는 사람이 되고 싶다. 매사 긍정적으로 살아가고 매일은 아니더라도 자주 행복한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러기 위해 나는 25년 전 초등학생 때의 내가 양파에게 해준 것처럼 나를 속이고 또 달랠 것이다.
 
 
오늘도 세상은 우리에게 조금 더 억척스러운 삶을 요구한다. 주 60시간으로는 제대로 된 사회생활을 영위할 수 없으니 120시간으로 늘리기를 원하고, 불굴의 마라토너처럼 물 먹는 시간도 아껴가며 레이스를 완주하길 바란다. 그러나 삶이란 고작 5시간 안에 끝나는 42.195킬로미터짜리 마라톤이 아닌 90년짜리 승부기에, 우린 역설적으로 90%로 사는 연습을 해야 한다. 적당한 열의로 꾸준히 살아내야 한다.   쉬어야 할 때 쉬지 않으면 정작 뛰어야 할 때 쉬게 된다. 그러니 다 쓰러져가는 나를 위해, 매일같이 지쳐 사는 나를 위해 부디 한 시간에 한 번쯤은 스스로에게 종을 울려주자. 어린 날의 학교처럼.   지금은 쉬라고. 지금 쉬지 않으면 분명 수업 시간에 졸 거라고.
 
 
생각이 많은 사람일수록 오늘을 살지 못한다고 한다. 사람이 하는 생각이란 대부분 과거에 대한 후회나 미래에 대한 걱정이기에 생각이 많을수록 오늘을 떠나보내기가 힘들어진다고. 그런 이유로 많은 전문의들은 숙면을 위해 생각 좀 그만하라고 처방 노래를 부르지만 도통 그 방법만은 알려주지 않는다. 그때 아내의 말이 떠오른 것이다. “생각? 생각은 무슨 생각… 그냥 따뜻하다?”   그간 완벽한 해결책이 있으리라 생각했다.
내 불면을 한순간에 날려줄 위대한 생각만 떠올리면 지금의 문제도 다 해결될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사실 생각을 없애기 위해 필요한 건 ‘더 완벽한 생각’이 아닌 ‘감각’이었다. 생각이 과거와 미래에 머무르는 시간이라면 감각은 온전히 현재를 느끼는 시간이니까.   ‘따뜻하다.’ ‘벌써 봄이네.’ 지금 이 순간을 느끼는 순간만큼은 생각을 잊을 수 있었다.   그렇기에 불면으로 고생하는 날, 우리가 자기 자신과 옆 사람에게 던져야 하는 질문은 이제 이렇게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자기 전 무슨 생각을 하나요?’가 아닌, ‘자기 전 무엇을 감각하나요?’로.
 
 
타인을 상처 냄으로써 내 상처를 치유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다. 내 상처 따위는 오롯이 책임지며 웃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어른에게도 어른이 필요하다. 만 19세가 넘은 모두를 어른이라 공인하기에 세상은 너무 빠르고, 어렵다. 심지어 더 가파른 속도로 어려워질 것이다. 그렇기에 우린 서로가 서로의 어른이 되어줘야 한다. 다시 한 번 소년 같은 아빠가 될 기회를 줘야 하고 신입사원 같은 부장이 될 용기도 가져야 한다.   어른이라는 이유로 모든 것을 책임지기에 나는, 아빠는, 그리고 우리는 여전히 너무 어리다.
 
 
20대 땐 자신을 명확히 정의할 줄 아는 선배들이 멋져 보였다. 하지만 그때 선배들의 나이가 어느새 까마득한 후배로 보이는 지금, 나는 스스로에 대한 궁금증을 잃지 않는 어른들이 멋지다. 여전히 나에 대해 잘 모르기에 무엇이든 될 수 있고 무엇이든 되려 하는 변화무쌍한 변덕쟁이들에게서 나는 멋을 느낀다.   우린 고작 몇 개의 단어들로 결코 정의될 수 없는, 개성 가득한 존재들이기에.
 
 
그래서 나는 될 수만 있다면 내 자식에게 더 많은 부와 더 많은 자산, 더 많은 욕심을 물려주기에 앞서 ‘적당한 무지’를 물려주고 싶다. 인생을 딱 절반만 알아서, 인간을 너무 많이 미워하지도 세상에 대한 환멸을 너무 많이 느끼지도 않았으면 좋겠다. 몰라도 되는 것은 모를 수 있는 적당한 안온함을 물려주고 싶다.   똑똑한 우울증보단 차라리 행복한 바보로 살았으면 좋겠다. 당신도, 나도.
 
 
미련해서 꾸준한 게 아니라 흔들리지 않아서 꾸준할 수 있다. 무언가를 남겨야 해서 열심히 사는 것이 아니라 삶을 낭비하고 싶지 않기에 열심히 산다. 그렇기에 꾸준함이란 미련함이 아닌 단단함이다. 요란한 세상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내 삶을 사는 튼튼한 태도다.   무언가를 지속할 수 있다는 건, 생각 이상으로 단단한 마음을 갖고 있다는 증거다.
 
 
세상에는 문제 삼지 않으면 문제가 되지 않는 것들이 더 많다. 우리가 병이라고 지칭하는 것들 중 대부분은 사는 데 지장 없는 성격이나 개성인 경우가 더 많고, 진짜로 치료가 필요한 건 오히려 그토록 작은 것조차 쉽게 넘어가지 않는 사회적 시선이다.   별것 아닌 것은 별것 아니게 둬야 한다. 늘려야 할 건 포비아가 아닌 성향이다.  우린 그렇게 많은 곳이 아프지 않다.
 
 
“그러니께 이담에 키가 훌쩍 자라도 너무 높은 곳만 보고 살지는 말어. 너는 위, 아래가 아니라 앞, 뒤를 보고 사는 거야. 네가 살아온 거, 그리고 살아갈 거. 그렇게 눈을 돌려야 보이더라고.   내 인생에도 이쁜 것이 참 많았다는 게.”
 
 
서로가 서로를 위해 변하는 것이 나쁘지 않은 관계. ‘너를 위해’라는 말랑말랑한 이유로 나를 포기하는 게 싫지 않다면, 그런 사람이라면 평생을 함께 해도 괜찮을 것이다.   나에게 있어 결혼이란, 가족이란 기분 좋게 패배할 수 있는 게임이니까.
 
 
그러니 오늘 하루도 무언가를 또 미루고 있을 게으른 완벽주의자들이여. 일단 눈앞에 보이는 것들 중 가장 비실한 목표를 데려오자. 절대 질 수 없는 게임을 시작하자. 내가 당신들을 대신해 이렇게 외쳐주겠다. 준비…   땅! 자, 눈앞의 가장 만만한 놈을 쥐어 팰 시간이다.
 
 
우린 너무 많은 것에 질투를 느끼며 산다. 방금까지 맛있게 먹고 있던 떡볶이도 해외여행을 간 지인의 인스타그램 사진 한 장에 비루해진다. 한때는 그것조차 장작으로 삼아 나를 더 불태웠지만 솔직히 이젠 정말 꺼지기 일보 직전이다.   그래서 비겁해도 할 수 없다. 나는 내 세계관을 줄일 것이다. 나를 병들게 하는 너에게서 도망칠 것이다. 너의 성공에서 눈을 돌리고 네 행복에도 무관심할 것이다. 이 풍진 세상에서 내 마음이 더는 상하지 않도록, 나는 너를 보지 않을 거다.   내 마음을 지키기 위해. 내 인생을 살기 위해.
 
 
사람에겐 때때로 말 없는 위로가 필요하다. 몇 마디 따끔한 말로 구성된 무정한 위로보다 너의 상처를 이해하고 있다는 깊은 끄덕임과, 진심으로 네 말에 공감하고 있다는 눈 마주침이 우리에겐 훨씬 더 절실할 때가 있다. 아니, 많다.   나는 이제 내 사람들을 그렇게 위로해주고 싶다.  “살아”라는 무책임한 한마디가 아니라, 살아볼 만한 하루를 같이 만들어보고 싶다.
 
 
어른의 행복은 조용하다. 짜릿함보다는 안도감에, 특별함보단 일상적임에 더 가깝다. 아무 탈 없이 일할 수 있어서, 아픈 곳 없이 가족과 통화할 수 있어서, 희망은 없어도 절망도 없이 내일을 또 살아갈 수 있어서 행복할 수 있는 게 지금의 내 삶이다. 누군가는 그토록 조용한 인생에서도 행복을 발견할 수 있냐고 묻겠지만, 물론.
 
조용함은 웃을 일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울 일이 없는 상태니까. 기쁜 일이 없는 하루가 아니라 나쁜 일이 없는 하루니까.
 
 
기록되지 않은 기억은 생각보다 더 추억으로 남지 못했다. 저화질로 풍화되어 내 머릿속 어딘가를 둥둥 유영하고 있을 뿐, 절대 인화되지 않았다. 그래서 나이가 들면 지갑만큼이나 카메라를 잘 열어야 했다. 늙어서 돈이 없는 것만큼 서러운 게 추억이 없는 것이었으니까.
 
 
때로는 소유하지 못한 고통보다 소유하는 불편함이 더 크다. 그 말처럼 빗금 쳐진 관계까지 끌어안으려다 소중한 마음까지 다치지는 않을 것이다. 놓아줄 것은 놓아주고 소중한 것에 더 집중하는 성숙함을 배울 것이다.   사람을 싫어해도 괜찮다. 소중한 것을 더 좋아하기 위해서.
 
 
마음이 지옥 같은 날, 모든 게 실패한 것 같은 날일수록 보다 공들여 웃고 감사하고 인사하자. 나를 위해서. 내 마음을 지키기 위해서. 그 작은 태도가 어떤 말보다 강력한 신호가 되어줄 테니.   오늘 나는 실패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무너지지 않았다. 나는 오늘 다시 시작한 사람이다.
 
 
때로 불쑥 생각한다. ‘내가 이렇게 편히 있어도 되는 걸까?’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았는데 행복을 이리 쉽게 누려도 되는 건지, 여전히 헷갈린다. 그런 순간이면 겁먹은 아이처럼 옆을 본다. 내 사람이 있다. 용기가 난다. 나는 이 사람과 함께 지금의 안온함을 가능한 힘껏 늘려보려 한다. 예쁜 옷을 입고 갔던 화려한 파티가 아니라 펑퍼짐한 츄리닝을 입고 함께 하는 이 저녁을, 내일로 모레로 늘리고 싶다.
 
 
어릴 땐 사람이 없는 시간이 외로움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살다 보니 사람이 진짜 외로워지는 순간은 혼자일 때가 아니라, 함께 있음에도 여전히 혼자 같은 순간이었다. 내가 아니라 누군가가 되어야만 사랑받을 수 있을 때, 사람은 진심으로 외로워졌다. 그러므로 사람에게, 아니 나에게 진정으로 필요했던 것은 옆 사람이 아니었다. 내 사람이었다.
 
 
행복이란 짜릿함만 있는 것이 아니기에. 편안함과 안도감. 안정감과 잔잔함. 깊은 밤 고민 없이 잠들 수 있는 감사함 또한 우린 행복이라 이름 붙일 수 있기에. 그러니 부쩍 불행하다는 기분이 자주 든다면, 나만 뒤처진 것 같다는 생각에 괴로워질 때가 많다면. 조용한 곳으로 들어가 스스로에게 한 번만 물어보자.
 
 
“내가 정말로 그렇게 불행해?” 세상이 주는 답에 잠시만 가위표로 반창고를 붙여보자. 행복이란 귀를 열 때보다 귀를 닫을 때 오히려 더 잘 찾아오니까.
 
 

 

 

 
30대 초반, 나는 내가 벌써 지쳤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렸을 적 가졌던 꿈도 희망도 어떤 것이었는지 더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무엇을 위해 일을 하고 돈을 벌고 살아가는 것일까.
 
SNS속에 있는 사람들은 나를 제외한 모두가 행복해 보였다. 나만 이렇게 아등바등 살고 있는걸까?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것 같은데, 매일매일이 힘든것 같은데 왜 삶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걸까. 오히려 더 나빠지고 있는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내가 생각한 어른의 삶과 너무나도 동떨어진 삶. 내 인생은 어쩌면 실패한 건 아닐까.
남들 다 멀쩡히 다니는 회사생활이 나한테는 왜이렇게 힘든 것일까. 나는 정말 어른들의 말처럼 인내심도 참을성도 없는걸까. 
 
원래 듣기좋은말이 적혀있는 이런 류의 책을 선호하진 않았다.
누군지 모르는 사람들이 적어놓은 달달한 말에 위로받고 싶지 않은 자존심도 얼핏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왠지 모르게 눈물이 나올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아, 나만 힘들었던게 아니었구나. 다들 그렇게 힘들구나. 그러기에 서로가 서로한테 이런말들도 해줄 수가 있는 거구나.
 
더이상 물러설 곳이 없는 나같은 사람들에게 정말 많은 위로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나도 어쩌면 그렇게 생각해봐도 되지 않을까?
 
"행복은 생각보다 비싸지 않다."
 
잠이들면 식은땀에 시달리는 불면증에 한창 시달렸던 시기가 있었다. 이상하게도 자려고 눕기만 하면 온갖 걱정들이 몰려오는 탓이었다. 하루 중 일어났던 일들 중에 내가 잘못한 것은 없을까, 그 선택이 최선이었을까. 하루를 되짚고 또 되짚으면서 잘못된 것은 없는지, 내일은 어떻게 해야할지 그 생각에 시달려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이제 조금 편해져 볼 수 있는 방법을  찾은 것 같기도 하다.
누군가에게도 그런 한줄기 희망이 되기를 바란다.
 

 
 
이 블로그의 독서노트는 본문 중 특정 구절을 발췌하여 주관적인 생각과 함께 기록하고 있는 독서 노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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